K에게
1.
되도록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생각이라는 걸 당최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지만, 할라치면 뇌 속 어딘가가 메스꺼우면서 눈동자가 빙글거리고 코끝으로 단전이 움직이는 신체적 이상현상이 오니까요. 도무지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려다 그만 두었습니다.
엄마가 어이없이 돌아가신 일을 그래서 생각지 않습니다. 핑계라고 할 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이유는, 아니 모든 이유는 신체가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매듭 짓고 이내 포기합니다. 죄책감은 없습니다. 엄마를 깊이 헤아리고 또 헤아리고 추억하고 슬퍼하고 그 죽음에 대해 죽을 만큼 아파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그러지도 않죠.
엄마가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게 떠오릅니다. 엄마의 발은 따듯했습니다. 엄마는 호흡기만 끼고 계시지 그저 잠을 자고 있는 듯 했지요. 달라진 것은 그저 엄마의 커트 퍼마가 조금 헝클어져 있다는 것.
- 엄마 돌아와. 일어나서 나랑 여행 가야지.. 알겠지?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 엄마... 엄마.....
- 이런 일이 왜 내게 일어나야 하는거지?
엄마가 수술 받고 있던 그 시간에 나는 대형 마트의 그릇 코너에서 도자기 그릇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 곧 엄마 수술이 끝나면 영상 통화 하고 안심하면 그 뿐이야. 괜찮을거야. 별 일 없었으니까.
그렇게 찰떡 같이 믿고 있었던 바보 멍청이 같은 나.
- 나는 나쁜 년, 나쁜 딸인데.. 왜 엄마가 죽어야 하는 거야..... 나쁜 건 난데.
돌아보면 엄마는 머리가 아팠습니다. 자주 아팠죠.
빈궁한 일상이었지만 그녀는 꿈이-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은 단어, 꿈- 너무나 너무 컸었더랬죠. 현명한 그녀는 가난한 살림살이를 윤이 나게 닦고 개미처럼, 일벌처럼 일궈 나가는 동안 옥토끼 같다고 읊조리던 자식 둘은 편하디 편하게 컸습니다. 우리 남매는 가난의 냄새 조차도 모를 만큼 포스랍게 자랐습니다. 동생은 거금 주고 산 캐논 카메라로 대학 동아리에서 주말마다 자연 풍경과 벌레 사진을 찍는 취미를, 그 누나인 난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할 만큼. 중산층이나 했을 그런 선택들을 바보같이 꿈꾸며.
빗으로 다듬고 다듬어 꽈악 틀어올린 머리를 묶어 대고, 노오란 원피스를 입혀서 피아노 대회를 내보내던 우리 엄마. 아내에게 조금도 너그럽지 못한 남편, 그리고 철없는 남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아셨던 겁니다.
- 네가 고단하구나. 네가 가엾구나.
아마도.. 그러시고도 남았을 겁니다.
2.
얼마 전 마주친 눈빛에서 경멸 내지는 비난을 느꼈는데 그것 때문에 한동안 괴로웠습니다. 왜 그렇게 사니, 하는 눈빛. 그런 감각은 저주의 주문처럼 외우고 있어선지 너무도 빠르게 읽어지죠. 그게 심한 낯갈이의 이유이고 그러한 이유로 내내 적응을 못하고 있습니다. 겉돌고 있어요. 하물며 게으름과 섞여 그다지 싫지도 않습니다.
위로하길,
- 백만 분의 일, 천만 분의 일도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 모르는 사람은 어떤 영향력도 끼칠 수 없다.
- 정성스럽게 싸매고 동여 놓고 고이 둘러 놓은 상처 투성이 테두리에 들어 올 수 없다.
큰 고무통에 그 시간들 내내 쏟아 낸 눈물을 받아서 목욕을 했다면 몇 번이고 했을테지요.
- 어리석었던들, 진창이었던들, 구부러진 골목길을 비틀거리며 걸었던 발걸음들은 왜 네게 부끄러워 해야 하나.
- 벗어나 추억마저도 희미해지려 하는 스토리에 관해 그 어떤 설명도, 해명도 하기 싫다.
- 당신의 눈빛 따위가 무슨 힘이 있는가. 그럴 권리가 당신에게 있는가.
그렇게 지독스럽게 아프고, 눈물로 짓무르는 눈두덩이를 하고서는 고개를 숙이고 사느라 살았는데 무슨 비난 세례를 더 받아야 한답니까. 거절하렵니다.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 엄마를 병들게 하고, 나를 병들게 했을지라도. 어리석어 그 경험들을 제대로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다 하더라도... 바운더리 안에 존재 조차 하지 않던 인물의 경멸스런 눈빛은 도저히 용납이 되질 않습니다.
편견이 아닐까도 여러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내가 출발이었나. 거절감을 안겼나.
그러나 곧 감사했습니다. 마주칠 때마다 하찮다는 듯 그 말투와 눈빛을 던져 주어 더 높은 성을 쌓아 올리는데 죄책감 같은 게 필요치 않아 좋았습니다. 옹건하지 않은 아군을 쉽게 구분하게 되어.
3.
엄마가 떠난 후,
자존감, 죽음, 지옥, 허무, 자식, 남편. 뭐 그런 것들을 제일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정신과적 치료를 받고 싶어졌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장이 난 것일까. 멍이 든 시작. 쿵 하고 떨어진 사과. 시간이 지나면서 쿵 패인 부분부터 단물이 나고 시큼달달한 향기를 풍기면서 그곳부터 썩어 들어가지요. 저도 그랬겠지요?
그런데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럼, 쿵 한 시점은 언제고 무엇이었는지. 그렇게 과정은 어떠했으며 결과는, 그리고 또다른 수많은 쿵은 언제였는지는 무엇이었는지에 관해.
K. 아마도 당신은 저와의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유추하실테지요? 그리고 진단해 내실 겁니다. 엄마의 죽음은 저를 살아도 사는 것 처럼은 두지 않았습니다. 산다는 것의 의미를 오히려 상실했다면 배부른 소리라고 하실 수많은 사람들의 입술들이 생생하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허무감이 밀려 옵니다. 사십 팔년 간이 나의 걸음들에 허무와 미련과 죄책감과 후회가, 쓸데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거센 파도처럼 아니, 쓰나미처럼 거대하게 일어납니다.
엄마는 나 때문에 죽었습니다.
엄마는 나 때문에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의사의 손을 빌어 엄마를 데려 가셨지만 그 쿵 하고 떨어진 원인은 바로 나 입니다. 엄마는.. 나 때문에... 죽었습니다.
K. 도무지 용서하지 못하겠습니다. 평생의 나도. 아버지에게 모욕감을 준 남편도. 슬픔의 생채기에 소금을 뿌리던 그들도. 그저 묻어 두었을 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버텨야 일상이 무너지지 않을테니. 전 고이 고이 접어 고이 고이 마련된 방 하나에다 간직합니다. 열쇠는 버렸습니다. 그리고 조금 따듯한 이불을 덮어 둡니다. 그래야 너무 차가워져서 얼어버리고 다른 방까지 냉골로 만들면 안되니까. 조금은 보일러도 켜 두고, 불도 켜 놓습니다. 대신 방문은 굳게 잠궈 아무도 들이지 않습니다.
드라마도 보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지만. 그 무엇도 힘이 없습니다. 감흥도. 영감도. 세상은 달라졌습니다. 그녀의 빈자리가 전부입니다. 나의 아군이... 사라졌습니다. 유일한 아군이.
K. 당신은 제게 뭐라고 하실 작정이십니까? 진단이 나왔나요? 우울증인가요? 아님 PTSD 라고 하실 건가요? 아님 도려낼 정신과적 신경증이나 신경장애가 의심되나요?
훈련받고 싶지 않습니다. 상담도 싫어요. 그런데 왜 찾아 왔냐구요? 이유를 알고 싶어서요. 엄마를 그렇게 데려가신 이유를. 확인을 해야겠어요. 정말 나 때문인지. 정말 나 때문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정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넌 이미 알고 있다, 같은 그런 허무한 대답을 듣고 싶지는 않아요. 경멸의 눈빛을 받아가며 살기에 난, 우리 엄마의 귀하고 귀한 딸이었기 때문에. 그런 딸이 엄마를 죽였다는 지독한 저주문이 가슴에 깊이 새겨지기를 원하지 않아요. 싫어요.
4.
그 수많은 쿵 중에 어떤 쿵이 시작인가요? 초등학교 1학년 하기 싫었던 아침 자습을 하지 않고 대충 뒷문제만 새 노트에 적은 것? 아님 엄마에게 보여줄 시험지의 점수를 고친 것? 8살 때부터 시작된 불안증. 지각 없는 교우 관계?? 거짓말. 아무렇지도 않게 무자비하게 아픔을 주는 말들. 부모님을 우습게 여겼던 내 모습? 교만. 94년도의 처절한 이별. 어리석은 연애. 배신. 성공 욕망. 나약한 도덕성. 나태한 생활 습관. 질투. 실패감. 모욕감. 수치심...... 그리고 만난 남편......
어떤 게 시작인가요. 내 존재 자체가 쿵인가요. 쿵으로 시작해서 쿵으로 끝났을 뿐. 다른 답은 없는 건데, 제가 지금 답을 묻고 있는 건가요? 그렇죠? 이게 정답인거죠? 인생 자체가 쿵인 인생인데...
K. 파괴적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어른이 되고 본성을 인정했고. 그래서 그 부분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절제와 의지력, 겸손과 인내는 정말이지 너무도 먼 덕목인듯 합니다. 제 유전 인자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많이 의기소침해졌습니다.